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(문단 편집) == [[제2차 세계 대전]] == || [[파일:노이라트1.jpg|width=100%]] || || 친위대 제복을 입은 폰 노이라트 || [[1939년]]에 체코 보호령의 총독으로 부임한 노이라트는 [[제2차 세계 대전]] 당시 체코인 레지스탕스 진압 등에 나섰지만 전체적으로 온건한 정책을 펴서 강권적 통치를 원한 히틀러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.[* [[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]]에서 감형이 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. 1939년 체코슬로바키안들 석방을 위해 보안경찰과 SD를 중재한 것, 1941년 폰 노이라트가 너무 온건하다고 질책하면서 [[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]]를 대신 보내겠다는 히틀러에 반기를 들었지만 설득에 실패하자 사임하겠다고 한 것, 그리고 본인의 사표가 수리되지 않자 체코 보호령 총독으로 일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이 판결문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다. [[https://avalon.law.yale.edu/imt/judneur.asp|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본 노이라트 판결문]]] [[1941년]]에 부총독 자리가 신설되자 국가보안본부장이던 [[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]]가 부총독으로서 [[프라하]]에 부임했다. 하이드리히는 체코 전역에 극심한 탄압정책을 편 후 노이라트의 실권을 빼앗았다. 하이드리히의 암살 후에도 후임 부총독이 된 [[쿠르트 달루게]]와 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인 [[카를 헤르만 프랑크]]에게도 밀린 노이라트는 [[1943년]] [[8월 24일]]에 총독직을 사임하게 되어 전직 내무장관이던 [[빌헬름 프리크]]에게 자리를 내 주고 말았다. 노이라트는 [[하인리히 힘러]]로부터 명예친위대 대장의 칭호를 부여받았지만 이후 직접 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없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